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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은 과연 비판을 대체할 수 있는가?


  최근 일부 개신교도들의 행위(사찰이 무너지게 해 달라는 기도, 이런 믿음은 안 돼, 단군상 훼손)에 의해 개신교도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그런 것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흔히 말하는 '개독교' 라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욕에서 흔히 쓰이는 '개-' 수식어를 이용한 일종의 변형·합성어라 할 수 있는데, 이 단어의 사용이 기독교의 신인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최근 제시되었다.

  * 적어도 기독을 개독으로 부르지는 맙시다. (http://ileshy.net/57)

  위 글의 논지는, '기독'이라는 단어는 'Christ', 즉 그리스도를 한자로 읽은 가차(假借, 단어의 뜻과는 상관없이 발음을 빌려와 해당 외래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을 '개독'이라 칭하는 것은 그 자체가 기독교의 신인 예수를 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이 블로그 메타사이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어, 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 기독을 개독이라 부르지 말라? (http://idealist.egloos.com/2770296)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독교'라는 단어에 '개신교'외의 다른 예수 계열 종교(천주교, 그리스 정교 등)는 포함되지 않으며(개신교도들의 행위를 논하기 위한 단어이므로) 그러한 비난 받을 일을 하는 명분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쓰는 개독교라는 단어에 대해 논할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밝히지만 필자는 딱히 기독교나 그 외의 종교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이후 일련의 사태의 추이를 보며 정말로 아쉬웠던 건 바로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이 없으니 비난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논리였다. 과연 비난이 비판을 대체할 수 있는가? 필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비판이 논리적이며 정당한 논거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비난은 보다 감정적이며 듣는 이의 감성에 호소한다. 비판과 달리 듣는 사람 스스로가 인정하고 납득하게 할 수 있는 힘이 비난에는 없다. '저런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다' 라고 넘겨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난의 대상도 주체도 아닌 제 3자의 시선에서 보면 비난은 오히려 비난의 주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에 일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설령 그 비난이 어느 정도 정당한 논거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양자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감정의 발산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또한 비판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비난은 그조차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비난은 상대방에 대한 인신 공격 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텍스트라는 제한된 표현 방식만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인터넷 상에서는 더더욱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상대도 다른 쪽을 존중하지 않으니 나도 상대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라는 논리는 그다지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자기 자신 또한 존중받을 수 없다' 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난이 비판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언가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비판을 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단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올바른 논거와 바른 예의가 전제되어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그것을 간과한 채 비판 대신 비난으로 일관한다면 설령 수천번 이상 목소리를 높힌다 해도 결국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비난은 비판의 대리도, 후계도 아니다. 무언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 그것이 비판인지, 비난인지 한번쯤 되짚어 보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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